남녀관계는 얼마나 중요할까?

요즘 젊은 사람들은 남녀관계를 너무나도 쉽게 생각합니다. 물론 예전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겠지만 지금은 더더욱 많아진것 같습니다. 결혼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결정인지, 사귐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지, 만남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를 모르고 무턱대고 만나고, 사귀고, 결혼을합니다. 그 결과는 많은 상처와 아픔, 그리고 이혼과 가족파멸입니다.

젊은 세대에게 올바른 관계쉽에 대한 교육을 하지 못한 어른들의 탓도 있지만 올바르게 살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젊은이들도 탓입니다. 물론 이 부분에 있어서요. 공부 열심히 하고 일 열심히 하고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많죠, 그러나 남녀 관계에 있어서는 많은 부분 사람들은 배우려하지 않고 경험부터 하려합니다.

인간의 욕망, 정욕, 욕심 때문에 그렇게 되죠. 우리는 모두가 외로움을 느끼고 그 외로움을 어떻게든 채우려합니다. 육체적인 유혹도 많습니다. 세상이 만들어 놓은 절제에 대한 안 좋은 시선도 있고요. 그 모든 것을 참고 절재를 하는 사람이 바보인 세상이 되어버린거죠. “그냥 사귀면 되지.” “그냥 자면 되지.” “뭐하러 결혼까지 기다려.” “해볼꺼 다 해봐야 좋은 사람 골라서 결혼 할 수 있지.” 이러한 얘기들로 이젠 세상이 가득 채워졌습니다.

이제는 남녀끼리 여행도 다녀올수 있는거고 남녀친구들끼리 자주 만나 놀고 남녀가 항상 같이 지내도 아무런 꺼리낌이 없는 사회가 되어버린거죠. 그런데 이 생각이 미치는 사회에 영향은 무엇일까요? 과연 더 자유로운 서회를 만들고 있을까요? 더 좋은 관계들이 형성이 되도록 도움을 주고 있는걸까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숫자적으로도 이혼률이 너무나도 높고 여러 방면에서 깨진 관계 때문에 허물어지는 인생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 영향이 너무나도 큽니다. 남녀사이를 너무 가볍게 여겨 그렇게 된거라고 생각합니다. 더 자세한 이유와 내용은 길기에 생략하겠습니다만, 관계가 가볍게 여겨지는만큼 쉽게 시작하는 만큼 버리기도 쉽습니다. 그러나 쉽게 생각한다고 그 일의 영향력도 가벼워지진 않습니다. 그 누군가에겐 어마어마한 상처를, 그 누군가에겐 인생의 포기를, 그 누군가에겐 세상을 행한 삐뚤어진 생각을, 나타나게 합니다.

제발 관계는 쉽게 가볍게 여기지 맙시다. 우리 모두는 소중한 존재이기에 서로 존중하며 진중한 생각 끝에 행동합시다. 불필요한 상처도 아픔도 사고도 일어날 필요가 없습니다. 다시 생각해보시고 좋은 결정을 내리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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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를 만드셨을까?

“하나님은 왜 당신을 만드셨습니까?”

그 누군가가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한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누구나 하나님을 믿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누구나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려고 노력할 수 있다. 그러나 위 질문에 답을 제시할수 없다면 그 모든것이 헛 수고가 되지 않을까요?

삶의 목적에 관한 질문입니다. 매일 눈 뜨는 이유입니다. 결정 내릴 때에 판단 기준이 됩니다. 노력해서 달성할 목표가 됩니다. 꿈을 품고 향해갈 목적이 됩니다. 위 질문에 대한 확실한 답이 없다면, 삶도 역시 확실하지 않은 삶이 되어버립니다.

확신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멋집니까. 무엇을 하기를 원하는지, 무엇을 이루고자하는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해야만 그것을 이룰수 있는지. 다 알고 확신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멋집니까.

하나님은 분명 뜻을 가지고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개인마다 특별한 미션을 주셨습니다. 그 미션을 먼저 발견해야만 우리는 진정 “성공”한 크리스찬이 되어나가는 과정을 밟을 수가 있습니다. 같이 기도하고 말씀묵상 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왜 만드셨습니까?

24시간 예수 바라보기..

24시간 예수 바라보기… 참 어렵습니다. 매순간순간 마다 우리는 죄에게 유혹을 당하고 항상 깨어 있어 싸워야합니다. 24시간 예수 바라보는것은 어느 순간 부턴가 되는것도 아닙니다. 아무리 성숙해져도 우리는 매일 예수님을 하나님을 선택해야합니다. 잘 살려고 노력하는것 과는 다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냐 아니냐의 선택입니다. 중간은 없지요.

여기서 우리에게 힘든것은 우리가 우리의 노력으로 할 수 없다는게 문제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도”를 닦아도 이룰 수 없는 일입니다. 착하게 살려고해도 예수님 따라 잘 살려고 발버둥을 쳐도 우리는 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인간인 우리의 현실이죠.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24시간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을까요? 우리가 할수 없는 일이라면…

바로 하나님이 하시는겁니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해야할것은 매순간의 선택입니다. 하나님을 선택하는 일이 우리의 일입니다. 그 나머지 모든것은 하나님이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리하면 이 모든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예수님을 24시간 우리의 힘으로 바라볼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죄가 너무나도 더 잘 보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우리는 눈 뜨는 순간부터 감는 순간까지 하나님을 택하면 그가 우리가 볼 수 있도록 나타나십니다. 빛이 나타나 어두움이 사라지듯 우리는 하나님을 택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나타나 죄를 물리치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는것은 온전히 하나님이 하시는 일임을 그리고 그것이 그의 은혜임을 깨닫습니다. We can’t but He can.

그의 은혜

그의 은혜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치유를 구하고,
불안함 속에서 하나님께 평안을 구하고,
슬픔 속이서 하나님의 기쁨을 구하고,
광야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고,
죄 속에서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고,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고,
두려움 속에서 하나님께 용기를 구하고,
모자람 속에서 하나님의 채우심을 구하고,

우리의 고통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 모든것은 다 하나님을 향하게 하는 것이니 기뻐하라. 모든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기에 감사하라.

누구를 위해서 사는가?

예수님은 세상에 계신 평생을 남을 위해서 사셨습니다. 그렇게 남을 위해 사셨어도 결국엔 그 사람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랑이 넘치셨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그와 다를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크리스찬은 예수와 같은 삶을 살아야하는 사람이 아닌가요? 그렇다면 우리는 인생을 온전히 남을 위해 살고. 핍박을 받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을 사랑해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오늘 날 기독교는 그 메세지는 온데간데 없고 물질적 축복, 평탄한 삶, 세상적인 상공만 가르칩니다. 죄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크리스찬의 삶이 평탄하기만 하다면 그것이야 말로 이상한게 아닐까요? 적의 공격을 항상 받으며 사는것이 정상이 아닐까요?

이렇게 크리스찬은 예수님 처럼 어찌보면 고생이 가득한 길을 택하여 하나님 은혜 속에서 살아갑니다. 고생길을 하나님의 은혜로 보니 세상 사람들이 제정신이 아니라고 하는것이 정상이겠죠. 그 힘든 길임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보다 기쁘고 사랑이 넘치고 평안이 가득하기에 하나님의 은혜라고 부르지요.

힘드신가요? 사탄의 공격을 받고 계신가요? 시험 당하셨나요? 고통 속에 계신가요?

지극히 정상입니다. 예수님도 그러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나도 크기에 그 모든것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의 은혜가 반듯이 우리 삶 가득히 채워질것입니다.

하루가 힘들때

하루하루 정신 없이 바쁘게 살다보면 사는 이유를 잃을 때가 있다. 하나님을 위해서 내 자신을 위해서 내가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 열심히 사는건데 그 마음은 사라지고 반복적인 일상에 기계처럼 아무 생각 없이 살게 될 때가 있다.

감사가 사라지고 짜증은 늘어나고 긍휼한 마음은 커녕 정죄하는 마음만 가득해진다. 그럴 때마다 한 박자 쉬면서 우리 자신을 돌아 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이 나를 이 자리에 보내신 이유를 되새기며 다시금 감사하는 마음을 찾고 그의 은혜가 얼마나 삶에 풍성히 나타나는지를 깨닫고 마음 가득 사랑을 다시 채우고 힘을 내어 또 한걸음 한걸음 나서야한다.

세상 사는건 그 누구에게도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아끼는 사람들이 나를 잊을까 두렵기도 하다. 낮선 곳에 가서 잘 살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다. 잘 해 내리라 생각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은 계속해서 존재한다.

하나님에게 의지하려고 그의 위대함을 믿고 나아가려고 매일매일 기도하며 매달려보지만 생각 처럼 쉽지는 않다. 그러니 하나님이 다 하시는게 아닌가 싶다. 내가 아닌 하나님이. 내 길이 아닌 하나님의 길을. 내 방식이 아닌 하나님의 방식을. 내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생각을. 결국 나의 나 됨이 하나님의 은혜라는것을 깨닫고 그 감동으로 힘내서 또 하루하루를 살아본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 (Out of sight, out of mind)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Out of sight, out of mind.

이렇게 영어로 한국말로 같은 내용의 말이 있다. 그마만큼 현실적으로 그렇다는 얘기가 아니겠는가.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에 약하고 보이지 않기에 관계를 이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도 역시 우리 눈에 안 보이기에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사는것이 아려운게 아닌가. 그러나 과연 안 보이시는걸까? 우리가 보려고 하지 않는걸까?

사람은 누구나 다 자신을 특정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한다. 어떤사람은 더 많은 사람에게 또 어떤 사람은 자기가 소중하게 여기는 소그룹에게. 그 대상이 어떻든 자기 자신의 존재 가치를 남에게서 느끼는 경우가 많다. 인생을 사는 내내 그렇다. 죽는 순간 마저도 잊혀질까 두렵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정말 가까운 관계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다. 좋은 부모 자식 관계에서 서로 잊혀질까봐 두려워하지 않는다. 부모는 언제나 자식을 사랑하는 존재로 자식은 부모를 공경하는 존재로 남게 되어있다. 정말 좋은 인간 관계에서는 우리는 우리 자신을 더이상 알리려고 하지 않는다. 이미 서로에 대해서 잘 알고 이미 서로의 존재가치가 형성이 되어서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주님 되신 하나님하고는 그런 관계를 맺지 못하는 것일까? 하나님은 우리를 잊으시지 않지만 우리는 가끔 하나님을 잊고 살게 된다. 그마만큼 관계가 형성이 되지 않아서이다. 정말 많은 크리스찬들이 입으로 시인하듯 믿음 생활을 했다면 오늘날 기독교가 이렇게 욕을 먹지는 않았을거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중히 생각하고 살았다면. 하나님을 잊고 살일은 절대 없을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하나님을 기억하며 사는 사람은 세상적으로도 좋은 사람 멋진 사람이 될수밖에 없다. 하나님을 잊지 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보이지 않는다고 소홀히 하지 말라. 그가 바라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라. 그러면 반듯이 하나님이 보일것이다. 그의 역사하심이 보일것이다. 그의 은혜가 충만하게 삶을 덮을 것이다.

Atonement – What is it?

First, I think it is appropriate to have the most basic definition of atonement.

atonement

noun

1. satisfaction or reparation for a wrong or injury; amends.
2. (sometimes initial capital letter) Theology. the doctrine concerning the reconciliation of God and humankind, especially as accomplished through the life, suffering, and death of Christ.
3. Archaic. reconciliation; agreement.

Atonement begins with a wrong. If there is nothing to fix, nothing to repair, nothing to amend, then atonement is not only unnecessary, it cannot exist. There must be a wrong before there can be atonement.

That wrong is our original sin. Then what is original sin? Is it the act of eating the forbidden fruit? No. Our original sin or what we can term THE “original sin” is the desire to do as I please while ignoring God. In essence it is the removal of God from our lives. Our desire to do everything without God and do as we please, thereby putting ourselves above God, is what we might call our original sin.

Therefore, the idea of atonement is the reparation of the relationship that was broken because of our original sin. Now this is different from the normal concept of atonement among ourselves. Within human relationships atonement is largely a two way action. There must be a willingness on the part of the wrongdoer as well as a heart of acceptance/forgiveness on the part of the wronged. Yes, most of the “responsibility” lies in the hands of the wronged; however, the balance is more “centered”.

With God the act of atonement is solely in the hands of God. Only he has the ability to repair what we broke. We cannot in any way resume our previous relationship with God. There is nothing that we can do to makeup for what we have done. The relationship is permanently broken – unless God steps in.

The good news is that God did step in – in the form of Jesus Christ. There are other instances prior to the arrival of Jesus, such as the establishment of a covenant with the Israelites and beginning a more personal relationship with those people; however, the most notable and relevant instance is Jesus Christ. Jesus was God’s chosen method for fixing our relationship with him (atonement). Through Jesus we are able to return to the relationship that existed before it was ever broken. Only through Jesus is this possible.

John 14:6 [ESV] “Jesus said to him, ‘I am the way, and the truth, and the life. No one comes to the Father except through me.'”

Galatians 1:3-5 [ESV]  “Grace to you and peace from God our Father and the Lord Jesus Christ, who gave himself for our sins to deliver us from the present evil age, according to the will of our God and Father, to whom be the glory forever and ever. Amen.”